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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시조 문익
  • 문씨대종회
    조회 수: 461, 2016.01.12 23:15:06
  • 중시조 문익(文翼)

     

    1. 중시조 휘 익의 기록

     

    남평 문씨로서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사람은 중시조인 휘 익(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휘 익에 대하여는 널리 알려진 바도 없으며, 중시조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는 편이다.

    후손들에 의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기본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고려사에 나타나는 중시조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1095년 2월 25일 왕의 근신으로 처음 기록이 보인다.

    1098년 3월 14일 정5품 좌찬선대부(左贊善大夫)에 임명되다.

    1098년 12월 26일 정4품 급사중에 (給事中)에 임명되다.

    1099년 10월 13일 고주사(告奏使) 겸 밀진사(密進使)로 왕자 책봉을 요청하러 요나라에 사신으로 가다

    1102년 6월 20일 종3품 직문하성(直門下省)에서 3품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임명되다.

    1103년 6월 20일 정3품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로 임명되다.

     

    위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시조가 역사에 나타나는 기간은 8년에 불과하다.

    1103년에 정3품 우산기상시로 승진한 뒤로는 그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중시조의 2이며 1156년에 사망한 문공원의 묘지명에는 중시조의 관직을 우산기상시로 기록하고 있으나,

    중시조의 4남으로 1159년에 사망한 문공유의 묘지명에는 좌산기상시로 기록하고 있다.

    (좌․우)산기상시는 중서문하성의 정3품으로 낭사(郎舍), 즉 간관의 가장 우두머리이다.

    고려사의 기록과 문공원의 묘지명 기록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문공유의 묘지명에 나타난 좌산기상시는 조심스럽게 오류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중시조는 산기상시 이후의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1103년 근처에서 사망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족보에는 최종관직명을 정2품 좌복야(左僕射)로 기록하고 있다.

     

    2. 아들들의 생졸시기에 의한 중시조 생졸시기 추정

     

    같은 문공유 묘지명에 의하면, 중시조는 4남을 둔 것으로 나타나는데, 딸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4남의 행적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장남은 문공미(文公美)는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뒤에 문공인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문공인의 급제년도는 1096년으로 추정된다.

    문공인은 묘청을 천거한 장본인이다.

    묘청의 난이 진압한 뒤, 묘청을 천거하였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1136년에 김부식 등의 개경파에 의하여 제거(좌천)되었다가 다음 해인 1137년에 사망하였다.

    1096년에 급제하여 사망할 때까지 40년을 넘게 관직에 있었으며, 사망 당시 치사하지 아니한 현관이었으므로 70세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문공인은 1068년 이후에 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대에 급제하였다. 처음 기록에는 문공미로 나타났다가 1128년경에 문공인(文公仁)으로 개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묘청과 연관시켜본다면 억지일까?

    후손은 확인되지 않으나 아들은 없었음이 문공유의 묘지명에서 확인된다.

     

    차남 문공원(文公元)은 묘지명에 의하면, 1156년에 73세로 사망하였으므로 1084년생이다.

    형 문공인과 터울이 10년은 더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문공인과 문공원 사이에 딸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추정으로는 중시조가 부인과 상처한 뒤, 재혼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묘지명에 문공원의 어머니는 유씨로 나타난다.

    문공원은 부음(父陰)으로 관직에 나아갔는데 31세인 1114년에야 비로소 진사제에 합격하였다.

    과거 급제여부는 확인되지 아니한다. 후손으로 아들은 없으며, 딸만 넷을 두었다.

     

    삼남은 승 가관(可觀)으로 조계종 대선사가 되었다.

     

    막내는 문공유(文公裕)는 묘지명에 의하면, 1112년 25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출생년도는 1088년이다. 1159년에 사망하였다

    위 기록 중, 문공인의 추정 출생년도가 1168년 이후이므로 중시조의 출생년도는 1050년경 전후로 추정이 가능하다할 것이다.

    사서의 최종기록이 우산기상시로 1103년이며, 문공원의 묘지명 또한 우산기상시로 기록하고 있다.

    다만, 문공유의 묘지명에는 좌산기상시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조심스럽게 오류로 보아진다.

    그렇다면, 중시조께서 돌아가신 시기는 1103년경이나 그 이후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중시조께서는 1050년경에 태어나 1105년 전후에 사망하였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3. 중시조의 상계

     

    중시조의 상계는 명확하지 아니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기록상 분명한 휘 익을 중시조로 한 것이다.

    중시조의 상계에 대하여는 고려사 열전 문공인전, 문공원과 문공유의 묘지명에서 약간이나마 살펴볼 수 있다.

    고려사 문공인전은 한미한 가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공인은) 과거에 급제하여 직사관(直史館)이 되었는데 한미한 가문으로 귀족(貴族)과 통혼하였으므로 제멋대로 호사를 부렸다.

    中第, 直史館, 家世單寒, 以連姻貴族, 恣爲豪奢

     

    한편, 문공원의 묘지명은 비록 일부가 마멸되지는 하였지만, 선계에 대하여 상세하고 기록하고 있다.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익(翼)의 아들이고, ▨▨ 신호위대장군 행초맹중랑장(神虎衛大將軍 行抄猛中郞將) ▨의 손자이다.

    증조 ▨은 관직이 ▨▨인데 명망이 높아 세상에 ▨ 알려져 있다.

    右散騎常侍翼之子 ▨▨神虎衛大將軍行抄猛中郎將▨之孫也 曾祖諱▨官▨▨高其名望▨著于世”

     

    또 문공유의 묘지명에도 공의 선조는 문반직과 무반직으로 조정에 벼슬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공의 선조는 문반직과 무반직으로 조정에 벼슬을 하였는데, 조부, 증조부,

    고조부에 대해서는 가첩(家牒)에 갖추어 기록되어 있으므로 여기에 다시 적지는 않는다.

    公之先世 以文虎膴仕於朝 皇祖曾高 在家牒此不復錄”

     

    이와 같이 중시조의 선계는 계속하여 관직에 있었다. 다만, 그 관직이 높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렇다고 하여 문공인전에서 기록하고 있는 바와 같은 “한미한 가문”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문공인이 묘청의 난과 관련이 있음으로 인하여 개경파에 의하여 축출되었기 때문에

    사가들이 이와 같이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위 기록에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그 당시에 이미 가첩이 유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족보가 비록 조선 초부터 작성되기 시작하였지만, 고려시대에 이미 집안에는 족보의 기초가 되는 가첩,

    즉 가승이 작성되어 전승되어 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아들들의 출사 방법

     

    장남 문공원은 1096년도에 과거에 급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중시조의 관직은 확인되지 아니하나, 아직 대부의 직에 오르지 못하였거나 대부의 직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아들에게 음직을 줄 정도의 관직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장남인 문공인이 1096년 급제할 무렵에 중시조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데,

    문공인이 급제할 당시 중시조의 관직이 미미한 점,

     

    차남인 문공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부음(父陰)으로 관직에 나아간 점,

    문공원이 부음(父陰)을 받았으므로 막내 문공유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문익    장남 문공인 (1096년 급제) 아들 없음

              차남 문공원 (父陰) 아들 없음

              막내 문공유 (1112년 급제)     문공유의 장남 문극겸은 백부 문공인의 음직을 받아 관직에 나아갔다.

                                                     문공유의 차남 문극순도 음직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문공유의 음직을 받아?)

                                                     문공유의 막내 문극이도 음직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문공원의 음직을 받아?)

     

      2016년 1월 12일

      소천 문점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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