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탐구

  • 7대 · 9대설에 대한 의견
  • 문씨대종회
    조회 수: 192, 2017.06.09 13:42:30
  • 1. 79대설 논란 (바뀐 과정 및 이유)

     

    상계 계보에 대하여는 어느 성씨나 논란이 적지않다.

    남평문씨의 경우에도 몇 가지 논란이 있는데, 이 경우도 그 논란 중의 하나에 속하며, 이를 일러 79대설이라 한다.

    이에 대하여 종인들로부터 많은 문의가 있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7대손9대손설 또는 7대조9대조설이라고 하여야 하나, 손 또는 조를 생략한 상태에서 79대설로 부르고 있다.

    이는 충선공 휘 익점 선조님이 충숙공 휘 극겸 선조님으로부터 7대손인가 아니면 9대손인가 또는

    충숙공 휘 극겸 선조님이 충선공 휘 익점 선조님의 7대조인가 9대조인가 하는 논란이다.

     

    일단 충숙공 휘 극겸 선조님으로부터 충선공 휘 익점 선조님까지 계보를 살펴보면,

     

    충숙공 휘 극겸 - 휘 후식 - 휘 정 - (휘 중연 - 휘 장영) - 휘 득준 - 휘 극검 - 휘 윤각 - 휘 숙선 - 휘 익점 으로 이어진다.

     

    7()설은 위 계보 중 (휘 중연 - 휘 장영) 두 분이 제외된 경우이며,

    9()설은 위 계보 중 (휘 중연 - 휘 장영) 두 분이 포함된 경우이다.

     

    79대설에 대한 논란은 오래되었으나,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731년에 간행된 남평문씨 최초의 족보인 신해보에서도 간행 당시 이미 79대설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하여 신해보는 임진란 이전에 작성된 모계가첩의 영향을 받아 9대설을 채택하였다.

    그 이후 간행된 족보들은 신해보의 영향을 받아 9대설로 기록하여 오다가,

     

    1792년 임자보를 거쳐 1808년 무진신보에서 남평문씨 시조 무성공 휘 다성으로부터 중시조 경절공 휘 익까지의 계보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의계라 하며, 의계 영향을 받은 1827년 정해보에서 최초로 7대설을 채택, 79대설이 논란되어 오다가

    1870년 경오보에서 7대설을 채택함으로 인하여 그 이후 간행된 대부분의 족보는 7대설로 기록하였다.

     

    625 동란 이후, 남평문씨대종회가 창립되고, 대종회에서 최초의 사업으로 간행된 정해보에서 다시 9대설을 채택, 사용하여 오다가

     

    다시 79대설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 상당기간 남평문씨대종회 종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2012년에 다시 7대설로 의결,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요약하면

    1731년 신해보 이후 1808년 무진보까지는 대부분 9대설 채택

    1827년 정해보 이후 1955년 을미보까지는 대부분 7대설 채택

    1959년 정해보 이후 1995년 을해보까지는 대부분 9대설 채택

    다시 7대 · 9대설에 대한  논란으로 2012년 종무회의에서 다시 7대설로 의결하였다.

     

     

    2. 79대설에 대한 종무위원회 의결

     

    위 내용과 같이 79대설에 대하여는 오랫동안 논란이 있어 왔는데, 이는 상계기록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일반 종인들은 상계논란에 대하여 접근하기 어려워, 대종회에서는 보학에 지식이 깊은 분들을 종무위원으로 선출하여

    족보에 관한 기록이 명확하지 않는 경우, 종무위원회의에서 의결하여 왔다.

     

    종무위원회에서는  위 내용과 같은 두 설에 대하여 깊은 논의를 거쳤는데, 그 결과

     

    1) 같은 시대에 활약한 충숙공 휘 극겸의 후손들 비교 검토

    고려말 같은 시대에 활약한 충숙공 휘 극겸의 후손으로 순평군 휘 달한 (?-1392), 태조 이성계 (1335-1408), 충선공 휘 익점(1331-1400) , 3명이 있는데,

    순평군 휘 달한은 충숙공의 6대손, 태조 이성계 역시 충숙공의 6대손이다.

    그러므로 이들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 충선공 휘 익점은 충숙공의 9대손이라기보다는 7대손이 타당하다.

     

    2) 1세대 30년과 비교 검토

    충숙공 휘 극겸은 1122년생이며, 충선공 휘 익점은 1331년생이므로

    9대설의 경우, 1세대는 (1331- 1122= 209) ÷ 9 = 23

    7대설의 경우, 1세대는 (1331- 1122= 209) ÷ 7 = 30년이다.

    1세대를 대략 30년으로 보므로, 이에 따르더라도 7대설이 타당하다.

     

    종무위원회에서는 위와 같은 취지로 7대설로 의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3. 결어

     

    79대설에 대하여 명확하지 않은 점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9대설(1731년 이후 77년간) 7대설(1827년 이후 132년간) 9대설(1959년 이후 55년간) 7대설 (2012년 의결) 로 변천되어 온 것이다.

     

    지금까지 이에 대하여 많은 논란을 거쳐 왔으며,

    대종회에서는 이를 종식시키고자 종사업무에 밝은 종무위원들의 검토를 거쳐 심사숙고한 결과 2012년에 7대설로 의결된 것이다.

    따라서 종인들은 대종회 종무위원회에서 의결된 내용에 따라 이후 7대설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20176

    소천 문점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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