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탐구

  • 문공원 묘지명
  • 문씨대종회
    조회 수: 54, 2016.04.15 16:20:43
  •   문공원은 중시조 휘 익의 차남이다. 공원의 묘지명은 일본으로 반출된 이후, 현재는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정경공(貞敬公) 묘지명

        중서시랑평장사 판이부사 수국사(中書侍郞平章事 判吏部事 修國史)이고 추증된 시호가 정경(貞敬)인 공이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외손자인 국학 양정재생(國學 養正齋生)인 조영심(趙永心) 등이 공의 행장(行狀)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우리 (조부?)가 살아계실 때 그대를 무척 후하게 대우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 분을 장례지내면서 마땅히 그대의 묘지명을 얻어서 묻고자 합니다.” 내가 그에 응답하여 말하였다. “공은 세상에서 마치 날짐승으로 봉()새가 있고, 길짐승으로 기린이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비록 배우지 못한 평범한 남녀라고 하더라도 모두 공을 우러러 존경할 줄 아는데, 하물며 내가 공의 문하에서 배운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감히 명()을 짓지 않겠습니까.”

    공은 남평군(南平郡) 사람으로, ()이 그의 성이고, 공원(公元)이 그의 이름이다.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의 아들이고, ▨▨ 신호위대장군 행초맹중랑장(神虎衛大將軍 行抄猛中郞將) 의 손자이다. 증조 은 관직이 ▨▨인데 명망이 높아 세상에 알려져 있다. 어머니 유씨(柳氏)는 어질고 덕이 있어 항상 공을 의()로써 가르치니, 바야흐로 옛말에 능히 효자로 하여금 충신이 되게 한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공은 처음 부음(父蔭)으로 관직을 받았으며, 유릉(裕陵, 睿宗)이 즉위한 지 10년이 되는 갑오년(예종 9, 1114 )에 진사제(進士第)에 합격하였다. 이어서 인종(仁宗)이 왕위를 잇자 공을 크게 등용할 만하다는 것을 알고 선발하여 우정언 지제고(右正言 知制誥)로 삼았다. 이로부터 무릇 역임한 관직이 모두 난대(鸞臺, 門下省)와 봉각(鳳閣, 中書省)을 벗어나지 않았다.

    공은 사람됨이 (聰明?)하고 너그럽고 안팎을 꿰뚫었으며, 사람을 성실함으로 대하고 공손하고 검소하며 ▨▨▨ 남의 잘못을 말하지 않았다. 또한 중대한 일을 대하면 대의(大義)로 결정하고, ▨▨ 말을 하였으면 죽음으로라도 그것을 실천하려 하니, 비록 ▨▨▨▨ 굽히는 바가 . 임금이 이로써 공을 중히 여기는 것이 ▨▨▨▨▨▨▨과 같았다. ▨▨▨ 하늘을 대신하여 ▨▨▨▨▨▨▨▨▨▨

    <뒷면>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남이 가히 ▨▨▨▨하였다.

    공은 상부(相府)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찰방사(察訪使)가 되고, 두 번 안부(按部, 按廉使)가 되었으며, 세 번 (道統?)이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모두 명성이 있었다. 경오년(의종 4, 1150 )에 과거[貢擧]를 주관하니 문생(門生)이 모두 당대의 현명하고 뛰어난 이들이었다. 사대부들이 이로 말미암아 공이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을 대단하게 여겼다.

    공은 중추원사(中樞院使) 이의(李顗)의 딸에게 장가들어 부인으로 삼았는데, 아들은 없고 딸 4명을 낳았다. 큰딸은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 최숙문(崔淑問)에게 시집갔고, 둘째 딸은 도염서령(都染署令) 박황(朴璜)에게 시집갔으며, 셋째 딸은 시대관서령(試大官署令) 조시언(趙時彦)에게 시집갔으며, 넷째 딸은 사경원판관(寫經院判官) 최언방(崔彦方)에게 시집갔다.

    공은 공명을 이루자 벼슬에서 물러나 전원의 경치를 즐기다가, 향년 73세인 병자년(의종 10, 1156) 12월에 병이 들어 돌아가셨다. 부음을 듣자 임금이 매우 슬퍼하여 조회를 3일 동안 멈추게 하고, 관리에게 명하여 장례일을 돕게 하였다. 조양산(朝陽山) 동쪽 기슭에서 화장[茶毗]하고 ▨▨▨ 513일에 오관산(五冠山) 천태사(天台寺) 부근에 개장하였다.

    , 선비가 문장으로 공을 세우고, 세 임금을 섬기면서 인신(人臣)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며,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예로부터 드문 것이다. 공은 이러한 것을 모두 갖추었으니 어찌 훌륭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하여 이른다.

    조물주의 조화는 멀고 아득하여, 번갈아 가며 지금과 옛날이 되는구나.

    백세(百世) 뒤에 언덕과 골짜기가 서로 바뀌더라도

    오직 공의 훌륭한 명성은 하늘과 같이 끝이 없으리라.

    ()을 새겨 유궁(幽宮)에 두니 그 덕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로다.

    문림랑 시대학박사 직사관(文林郞 試大學博士 直史館) ()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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