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탐구

  • 고려사 열전 문익점전
  • 문씨대종회
    조회 수: 213, 2016.04.15 16:16:32
  • 문익점(文益漸)은 진주(晋州) 강성현(江城縣) 사람이다. 공민왕(恭愍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번 옮겨 정언(正言)이 되었다. 사신이 되어 원()에 갔다가 그곳에 머물면서 덕흥군(德興君)에게 붙었다가 덕흥군이 패하자 곧 돌아왔다. 목면(木緜)의 종자(種子)를 얻어 돌아와서 그의 장인 정천익(鄭天益)에게 부탁하여 심게 하였다. 처음에는 배양(培養)하는 기술을 알지 못하여 거의 말라죽고 다만 1줄기만 남았는데, 3년 만에 마침내 크게 번식하였다. 취자차(取子車)와 소사차(繅絲車)는 모두 정천익이 만들었다.

    창왕(昌王)이 즉위하자 좌사의시학(左司議侍學)으로 글을 올려 학문하는 도리를 논하였다. 그때 간관(諫官) 이준(李竴) 등이 사전(私田)을 되돌려 주어서는 안 된다고 글을 올려 간쟁(諫爭)하자, 문익점은 이색(李穡이림(李琳우현보(禹玄寶) 편에 붙어서 병을 핑계로 서명하지 않았다. 다음날 곧바로 서연(書筵)에 나가자 대사헌(大司憲) 조준(趙浚)이 탄핵하여 말하기를, “문익점은 본래 유일(遺逸)로서 진주(晉州) 구석진 곳에서 몸소 농사짓던 사람이었습니다. 전하(殿下)께서 덕행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여[賢良] 불러 간대부(諫大夫)로 임명하여 곁에 두고 자문하도록 하였으니, 마땅히 마음을 다하여 충언(忠言)을 올리고 치도(治道)를 아룀으로써 전하의 다스림[聖治]을 보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경연(經筵)에서 전하를 모시면서 아부하고 비굴하게 굴면서 충직(忠直)한 모양을 꾸미고 순종하며 영합하여 간쟁(諫諍)하는 절개 없이 허리를 굽혀 손을 맞잡고 예예옳사옵니다.’라고만 하였습니다. 근래에 동사랑(同舍郞) 오사충(吳思忠)과 이서(李舒)는 각각 상소(上䟽)하여 시사(時事)를 거리낌 없이 말했지만, 문익점은 받고 있는 녹봉을 잃을까 걱정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동사랑들이 연명으로 상소하여 전제(田制)를 철저하게 논의하였지만 문익점은 권세가의 편에 붙어서 병을 핑계로 근무하지 않아 그 의논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비방을 피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좋은 꾀를 얻었다고 하여, 위로는 전하의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에 누를 끼치고 아래로는 사림(士林)의 기대하는 뜻을 저버린 것입니다. 이는 마땅히 그의 작위(爵位)를 삭탈(削奪)하여 시골로 돌려보냄으로써 언관(言官)으로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자들의 경계로 삼으십시오.”라고 하였더니, 이에 그를 파직시켰다. 아들은 문중용(文中庸문중성(文中誠문중실(文中實문중진(文中晋문중계(文中啓)이다.

    아래 문익점 동상은 서울 광진구 화양동 303-1 동아자동차 운전학원 내 청암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문익점동상-1.jpg


    문익점동상-2.jpg



댓글 0 ...

http://moonsi.cafe24.com/xe/bord09/331730
번호
제목
이름
29 문씨대종회 17 2019.05.12
28 문씨대종회 150 2018.07.30
27 문씨대종회 114 2018.06.11
26 문씨대종회 78 2017.10.07
25 문씨대종회 272 2017.10.04
24 문씨대종회 150 2017.09.25
23 문씨대종회 192 2017.06.09
22 문씨대종회 1231 2017.02.25
21 문씨대종회 937 2016.07.22
20 문씨대종회 166 2016.04.24
19 문씨대종회 211 2016.04.24
18 문씨대종회 799 2016.04.16
17 문씨대종회 441 2016.04.16
16 문씨대종회 191 2016.04.15
15 문씨대종회 271 2016.04.15
14 문씨대종회 54 2016.04.15
문씨대종회 213 2016.04.15
12 문씨대종회 287 2016.04.15
11 문씨대종회 132 2016.04.15
10 문씨대종회 231 2016.04.15
태그